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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일 3일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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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발위치

전라남도 강진군 병영면 병영성로 175 성동리, 전라병영성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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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병영성

주소

강진군 병영면 병영성로 175

전화번호

061-430-3312

500년 호국정신의 성진 전라병영성 (사적 397호)
전라병영성(全羅兵營城)은 조선 태종 17년(1417년)에 설치되어 고종 32년(1895년) 갑오경장까지 조선조 500여 년간 전라남도와 제주도를 포함한 53주 6진을 총괄한 육군의 총지휘부이다. 그러나 1894년 갑오농민전쟁(동학)을 맞아 병화로 소실되었고, 이어 1895년 갑오경장의 신제도에 의해 폐영되고 말았다. 병영성 성곽의 총 길이는 1,060m이며, 높이는 3.5m, 면적은 93.139㎡(28.175평)인데, 현재 사적 397호로 지정되어 있다.
병영성 내의 당시 건물이나 유적은 소실되고 없으나 성곽은 뚜렷이 남아 있어, 그 역사적 의의를 고려하여 2010년까지 정비할 계획으로 현재 복원 중이다.
특히 병영성은 서양에 우리나라를 처음으로 소개했던 하멜이 1656년 강진 병영으로 유배되어 7년 동안 살면서 노역했던 곳으로서, 주변의 '하멜 기념관'과 함께 하멜 관련 역사문화 유적지로서의 역할도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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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멜기념관

주소

강진군 병영면 병영성로 180

전화번호

061-430-3318

하멜기념관은 우리나라를 서양에 최초로 알린『하멜보고서』의 저자 헨드릭 하멜(Hendric Hamel)의 생애와 업적을 기리고, 강진과 네덜란드 호르큼 시와의 활발한 문화적 교류를 위해 개관하였다. 타원형의 목조건축으로 지어진 왼쪽의 전시관은 하멜이 표착한 남도의 섬을 상징하며, 오른쪽 각진 형태의 건물은 망망대해에 표류한 조난선 스페르베르(Sperwer)호를 상징한다.
전시실은 『하멜보고서』를 비롯하여 하멜의 생애, 17세기 조선과 네덜란드의 사회·문화·역사적 상황, 그리고 강진군과 네덜란드 호르큼 시의 자매결연 등 각 주제별로 감상할 수 있는 공간으로 꾸며져있다.
하멜기념관은 100여 점의 유물을 소장하고 있으며, 그 중 70여 점의 유물을 상설 전시하고 있다. 하멜기념관은 하멜의 조선 표착의 역사적 의미 및 17세기 국제 교류사의 조사연구, 유물 전시를 통한 교육, 나아가 한국·네덜란드 간의 문화적 교류 증대를 위해 지역 전문기관으로서의 역할을 다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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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미륵사

주소

강진군 군동면 풍동1길 6

전화번호

061-433-6460

세계 불교 미륵대종 총본산인 남미륵사는 1980년에 석 법흥 스님이 창건하였다. 이후 법흥스님이 30여 년 동안 새로운 건물을 중창하고, 꽃과 나무로 사찰 안팎을 가꾸어 현재의 웅장하고도 아름다운 경관을 갖게 되었다. 현재 남미륵사에는 동양 최대 규모의 황동 아미타불 불상이 있으며, 일주문에서부터 경내에 이르는 길에는 500 나한상이 배치되어 있다. 이 밖에도 대웅전, 시왕전, 33관음전, 만불전, 천불전, 팔각 13층 석탑, 사각 33석탑, 18m 해수 관음보살, 5m 부부코끼리상 등 아름다운 시설물이 풍동 마을 경관과 잘 어우러져 불자뿐만 아니라 많은 관광객이 찾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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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감통

주소

강진군 강진읍 오감길 2

전화번호

061-430-3074

'음악인들의 사랑방이자 놀이터인 음악창작소, 공연과 영화가 펼쳐지는 푸르른 잔디광장, 강진의 맛을 한 곳에 모은 먹거리장터, 백년 간 강진한정식의 전통을 이어온 한정식체험관 등이 마련되어 있다.강진오감통에는 몸을 들썩이는 화려한 공연, 눈과 입이 즐거운 산해진미, 특별한 재미가 넘치는 체험거리, 지친 일상을 달래는 힐링여행, 건강한 식탁을 만드는 친환경 로컬푸드가 있다.

먹거리장터

지상 1층 규모로 강진의 대표적인 브랜드 음식인 회춘탕과 김대중대통령 밥삼, 병영 돼지불고기, 황칠오리 등 강진을 대표할 수 있는 특화음식점

한정식체험관

100년 전통의 역사를 이어온 지역 한정식업체가 운영하는 곳으로 강진한정식

음악창작소

지상 2층 규모의 음악전용 공간으로 1층에는 음악 스튜디오와 음악카페가 위치하며 2층에는 전문 공연장과 게스트룸이 있다. 4월부터 10월까지 매주 토요일에는 다양한 장르의 음악 공연이 잔디광장에서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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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랑생가

  • 영랑생가

주소

강진군 강진읍 영랑생가길 15

전화번호

061-430-3377

영랑 김윤식 선생은 1903년 1월 16일 이곳에서 김종호의 2남 3녀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어릴 때에는 채준으로 불렀으나 윤식으로 개명하였으며 영랑은 아호인데 문단활동시에는 주로 이 아호를 사용했다. 영랑 선생은 1950년 9월 29일 작고하기까지 주옥같은 시 80여편을 발표하였는데 그중 60여편이 광복전 창씨개명과 신사참배를 거부하며 이곳에서 생활하던 시기에 쓴 작품이다. 영랑생가는 1948년 영랑이 서울로 이거한 후 몇 차례 전매 되었으나 1985년 강진군에서 매입하여 관리해 오고 있는데 안채는 일부 변형 되었던 것을 1992년에 원형으로 보수하였고, 문간채는 철거 되었던 것을 영랑 가족들의 고증을 얻어 1993년에 복원하였다. 생가에는 시의 소재가 되었던 샘, 동백나무, 장독대, 감나무 등이 남아 있으며 모란이 많이 심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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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문학파기념관

  • 시문학파 도서관

주소

강진군 강진읍 영랑생가길 14

전화번호

061-430-3372

'시문학파'는 1930년대 순수시 운동을 전개했던 문학 동인회의 명칭이다. 시문학파기념관은 1930년 3월 5일 창간한 <시문학>을 통해 활동했던 영랑 김윤식, 용아 박용철, 정지용, 위당 정인보, 연포 이하윤, 수주 변영로, 김현구, 신석정, 허 보 등 당대를 대표하는 9인의 시인을 가리는 한국 최초의 유파 문학관이다. 이들 9명의 동인이 1세기여 만에 시문학파기념관이란 공간에서 다시 만나게 되었다. 특히 국내에 여러 문학관들이 있지만, 이렇듯 특정 문인이 아닌 유파 전체를 한자리에 아우르는 예는 강진의 시문학파기념관이 전국 최초이다. 시문학파 시인들이 사진과 유품, 친필, 저서 등이 전시되 있으며, <시문학>지 원본을 비롯해 김소월의 <진달래꽃>(1925), 한용운의 <님의침묵>초간본(1926), 윤동주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1948) 등 국문학사에 길이 빛날 희귀본들이 소장되어 있다. 제1종 전문박물관이기도 한 시문학파기념관은 <2017년 대한민국 최우수 문학관>에 선정되 국내 문학관 운영의 롤모델로 부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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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문공원(사랑+구름다리)

주소

강진군 도암면 백도로 2084

전화번호

061-430-3282

석문공원

남도의 소금강이라 불리는 석문공원은 석문(石門)이라는 이름 그대로 긴 세월과 비바람이 조각한 기암괴석들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으며, 만덕산과 석문산의 단절된 등산로를 연결하는 사랑⁺ 구름다리가 있다.

사랑+ 구름다리

길이 111m, 폭 1.5m로 산악현수형 출렁다리인 사랑⁺ 구름다리는 만덕산과 석문산의 단절된 등산로를 연결하고, 구름다리 양끝에는 하트모양의 게이트 겸 포토존 조형물이 설치되어 등산객들에게는 만남의 장소로 연인들에게는 사랑이 이뤄지는 장소이다. 구름다리에서 보는 석문산과 만덕산의 빼어난 경관은 보는 이에게 절로 감탄사가 나오게 한다

산책로 및 등산로

  • 가족길(1시간) : 관리소-노적봉-구름다리-세종바위 포토존-석문공원

  • 연인길(2시간) : 관리소-석문정-노적봉-구름다리-세종바위 포토존-석문공원

  • 누비길(3시간) : 관리소-석문정-노적봉-구름다리-세종바위-통천문-세종바위 포토존-석문공원

석문공원 물놀이장

총 290㎡ 규모로 3개의 풀장(피아노풀, 첼로풀, 유아풀)으로 이루짐. (석문공원 내 야영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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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초당(다산기념관)

주소

강진군 도암면 다산초당길 68-35

전화번호

061-430-3911

강진만이 한눈으로 굽어 보는 만덕산 기슭에 자리한 다산초당은 다산 정약용 선생이 강진 유배 18년중 10여년 동안을 생활하시면서 목민심서, 경세유표, 흠흠신서등 600여권에 달하는 조선조 후기 실학을 집대성 하였던 곳이다.
다산 정약용 선생은 진주목사를 지낸 정재원의 넷째 아들로 태어나 28세에 문과에 급제하여 예문관검열, 병조참지. 형조참의 등을 지냈으며 1801년 신유사옥으로 경상도 장기로 유배되었다가 황사영 백서사건으로 다시 강진으로 유배되었다.
처음에는 강진읍 동문밖 주막과 고성사의 보은산방, 제자 이학래 집 등에서 8년을 보낸 후 1808년 봄에 다산초당으로 거처를 옮겨 해배되던 1818년 9월까지 10여년 동안을 다산초당에서 생활하면서 제자들을 가르치고 저술을 하였으며, 다산의 위대한 업적이 대부분 이곳에서 이루어졌다.
다산초당은 노후로 인해 붕괴되었던 것을 1957년 복원하였고 그 후 다산선생이 거처하였던 동암과 제자들의 유숙처였던 서암을 복원하였다.
다산초당에는 이밖에도 다산선생이 「丁石」이라는 글자를 직접 새긴 정석바위, 차를 끓이던 약수인 약천, 차를 끓였던 반석인 다조, 연못가운데 조그만 산처럼 쌓아놓은 연지석가산 등 다산사경과 다산선생이 시름을 달래던 장소에 세워진 천일각이라는 정자가 있다.